행복누리 소속 남혜정(가운데)씨가 충청북도 청원군 엘지화학 오창공장 본관 3층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주문받고 있다.
행복누리 소속 남혜정(가운데)씨가 충청북도 청원군 엘지화학 오창공장 본관 3층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주문받고 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 엘지화학 오창공장

67명 정규직 세차·안마·카페·매점·환경미화 등 복지업무
‘함께하는 삶’ 연대감 속 공장 직원들은 복리후생 만족감
 
“통근버스 타고 출근하는데 낯설었어요. 평생 혼자 생활하다 사람들과 섞여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려니 떨렸죠. 한편으으로는 여러 사람과 생활하면 자활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반기업 직원들과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1m 남짓한 키의 김현숙(50·여·지체장애)씨는 1년 전 첫 출근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김씨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어울리는 일터가 많지 않다고 했다.

 

왜소증을 갖고 있는 김씨는 20대 후반부터 가사도우미로 20여년을 일했다. 지난해 초 일을 그만 둔 김씨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문을 두드렸고, 같은해 4월 면접을 거쳐 엘지(LG)화학의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인 ‘행복누리’에 채용됐다.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엘지화학 오창공장의 실내·외 환경미화가 김씨의 업무다. 김씨는 “일반기업에서 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폭넓게 (비장애인과) 생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은 언뜻 생소하다. 흔히 말하는 장애인기업은 정부지원을 받아 장애인 위주로 회사를 만들어 운영한다. 장애인이 사회와 격리돼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장애인표준사업장은 기업이 장애인 일자리를 마련해 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장애인을 채용한다. 기업의 생산활동에 장애인이 참여하는 것이다. 2003년부터 시행중인데 장애인 편의시설 구비, 최저임금 이상 지급 등 요건을 갖춰야 한다. 기업부담은 크고 정부지원 혜택은 적어 대기업이 아니면 지속적 운영이 힘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낸 자료를 보면 장애인표준사업장을 운영중인 대기업은 엘지와 삼성, 포스코, 에스티엑스(STX) 4곳이다. 

 

‘행복누리’에는 현재 경증장애인 16명, 중증장애인 51명이 일하고 있다. 모두 정규직이다. 채용 뒤 2~3주 동안 직업훈련을 받은 이들은 오창공장에서 세차, 헬스키퍼(안마), 카페, 매점, 시설관리, 환경미화 등 복지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 3월 법인 설립 때 경증·중증장애인은 각각 7명, 24명이었다. 1년만에 인력이 갑절 넘게 늘었다. 오창공장에서 시작한 장애인표준사업장은 청주공장과 대전 기술연구원으로 확대했다.

 

“안녕하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오창공장 본관 3층 카페테리아. 남혜정(25·여·지적장애)씨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졸음이 싹 가신다. 주문을 하자 탬핑(분쇄된 원두를 추출기구에 다지는 작업)에서 추출까지 김용현(22·뇌병변장애)씨와 심완섭(21·지적장애)씨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김씨는 가장 자신있는 메뉴로 아메리카노를 꼽았다. 김씨는 “커피 추출의 생명은 탬핑인데 분말을 살짝 올려놓는 게 비법”이라고 귀띔했다. 원두는 커피거리로 명성이 난 강릉의 유명 제품을 쓴다. 아메리카노 한잔을 1000원 주고 먹기엔 넘치는 맛이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보다 한두시간 일찍 나오는 심씨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창공장엔 두곳의 카페테리아가 있다. 원래 휴게실로 쇼파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공간인데 행복누리 사업을 하며 카페테리아를 만들었다. 카페테리아엔 현재 7명의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한달 매출은 1500만원. 이종일 행복누리 부장은 “카페테리아가 들어서면서 휴게실이 사랑방이 됐다. 커피맛에 대한 직원들 반응이 좋다. 점심시간에 오면 사람이 북적대 커피를 못 사 먹을 정도다. 수익사업이라기보단 재료값만 받는다고 보면 된다. 수익이 나면 행복누리 직원 생일 때 상품권을 주는 등 복리후생에 쓴다”고 말했다.

 

카페테리아 입구 양 옆엔 ‘함께 누리는 행복한 삶’이란 문구가 입간판에 새겨져 있다. 출범 당시 테이프커팅을 할 때 놓은 입간판을 그대로 남겨놨다. ‘함께한다’는 걸 공유하기 위해서다. 행복누리 직원들은 오창공장 직원들과 같은 통근버스를 타고 식사도 하루 세끼 같은 식당에서 공짜로 함께 한다. 환경미화 업무를 하는 김아무개씨(본인 익명 요청)는 “전에 일한 곳에선 일반 직원들과 밥을 따로 먹었는데 여기선 같이 먹어 이상했다. 청소를 하고 있으면 직원들이 눈인사를 해서 좋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을 해주는 ‘마음그린 상담실’도 함께 쓰고 있다. 전문 심리상담사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행복누리 직원들을 돕는다.

 

동료라는 연대감과 대기업 정규직이란 소속감은 행복누리 직원들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다.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50대 윤아무개씨(본인 익명 요청)는 오른팔로만 비질을 한다. 윤씨는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산업재해로 왼팔을 잃었다. 중증장애로 처음 4시간 근무만 했으나(중증장애 4시간, 경증장애 8시간 근무 원칙)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대인관계가 좋아 8시간으로 근무를 늘렸다. 최근 매점에 채용된 직원은 정신지체장애인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자리라 처음엔 걱정이 컸지만 매끄럽게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기영 행복누리 대표는 “몸이 불편하고 나이가 많아도 취업 욕구가 크고 삶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분들이다. 일을 시작한 뒤 긍정적 효과들이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오창공장 직원들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오창공장은 전직원 모임 때 장애인고용공단 강사를 불러 장애인 인식 개선 강의를 갖기도 했다. 최영수 오창공장 생산팀 실장은 “행복누리로 공장 직원들이 복리후생을 받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내부 평가가 있지만 고민도 있다. 지속가능한 장애인표준사업장 유지를 위해 장애인에 맞는 직무 개발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누리 출범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승필 오창공장 총무팀 과장은 “올 연말까지 총 100명 고용이 목표인데 새로 할 수 있는 장애인 직무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외국 사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청원/글·사진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